나는 젊어서 아주 귀한 비즈니스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불가능이란 없다”는 생각이 평생동안 내 가슴 깊이 새겨진 경험이었다. 1970년대 후반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신생 무역업체 율산실업(주)에서의 경험이다. 율산은 내가 5년간 몸담었는데, 그 5년사이 율산은 대한민국 10대 종합상사로 성장, 현대, 삼성, 대우…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 모델기업으로까지 키워보려고 했다는 얘기도 있었던 대단한 회사였다.
1980년대초 율산이 도산했고, 그 무렵 박정희가 세상을 떠났다. 직접적인 연관관계는 없었지만, 율산의 도산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의 첫 단추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대한민국 10대 종합상사가 하루 아침에 도산했다는 뉴스는 국제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고, 한국 기업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신뢰가 급격히 하락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런던 금융시장의 단기융자 리보금리(LIBOR)가 한국기업에 특별 인상 적용된 것이다. 한국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었음은 물론이다. 급한 자금을 빌리기가 힘들어지면서 기업들의 부산.마산 공단의 임금 체불 사태가 6개월씩 이어졌다. 소위 ‘부마사태(부산/마산폭동)’ 발생의 원인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한 진압 방안을 두고 중앙정보장과 청와대 비서실장간 의견 충돌이 생기면서 박정희 피살사건으로 귀결되었다.
율산의 도산으로 인해 함께 했던 많은 인재들이 쓴맛을 보았지만, 나는 잃었던 것보다도 얻었던 교훈이 크다. 어느 사업체나 조직이든 뛰어난 인재들이 앞장 설때 막강한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특히 사업은 감각으로 하는 것이다. ‘컬럼버스 달걀‘을 실현할 수 있는 인재들이 필요한 이유다.
율산의 경험을 통해 얻는 또 다른 교훈은 사업은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기초를 다지고 다지면서 가능하면 그 기간을 좀 더 길게 잡아야 한다는 거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엄청난 에너지가 폭발해 더 큰 것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거다. 그런데 당시 율산의 창업자 신선호는 3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5년도 안되어 10대 종합상사를 만들었다가 패장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를 도산 후 만나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얘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선배님 연세 60세에 이런 종합상사를 만들어도 되었을텐데 왜 그렇게 서두르셨습니까?”
지난 달 뉴욕방문을 마치고 볼티모아를 지나다 GENESIS사 3대를 이어가는 청년 사업가 이지한씨와 인터뷰를 하면서 나의 율산 경험을 나눈바 있다. 좋은 인재들을 영입할 것,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그라운드를 잘 다질 것, 이 두마디를 해주었다. 3대에 이어 4대에 이르면 세상을 얻을 거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우리 업계는 이지한씨 같은 2세, 3세 사업가들이 가업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금 가진 것에 으쓱하지 마시라. 겸허 하시라. 세상에는 당신들 보다 수백배 수천배 부자들이 수없이 많다. 4대, 5대를 이어가며 더 큰 미래를 꿈꾸시라. 그리고 민족의 이름으로 세상을 바꾸는 큰 일들을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