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gun)쇼도 많고 총기상도 여기 저기 흔할 걸 보면, 미국에서 총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는 듯 하다.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장고' 속 총격 장면을 보면 왜 그를'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고 부르는지 알것 같다. 영화속 총격전에서 물풍선이 터지듯 피가 공중에 흩뿌려지는 장면을 보노라면, 순간 내 몸속의 새디스트적인 본능이 살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다.
일생을 통해 총에 관한 경험은 드문 것이다. 특히 총기소지가 자유롭지 않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총에 대한 나의 첫경험은 논산훈련소 30연대 사격장에서 였다. 피알아이 체조 끝에 쏜 영점사격 첫 발의 기억은 온통 고막을 찟는 듯한 굉음과 통증으로 남아있다. 아직도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총을 쏠 때 보다 보조사수로 곁에 있을 때가 더 큰 충격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환난을 겪는 당사자 보다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이 더 큰 충격을 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군생활 중 사격의 경험이 희미해질 때 쯤, 40에 미국에 와 미용용품점을 오픈한지 얼마 안되어 총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강도가 '프리즈'를 외치며 총구를 내 관자놀이에 댔다. 짧은 머리카락을 뚫고 전해지는 쇠붙이의 싸늘한 감촉이 온몸을 굳게 만들었다. 짧은 시간에 캐시레지스터가 열리고 수백 달러가 털리고, 뒤늦게 온 경찰의 유유자적한 반응과 권태로운 리포트 작성의 태도에 다시 한번 놀라기도 했었다. 아무도 총에 맞지 않은 사건은 경찰에게 교통사고 티켓 발급과 크게 다를게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가게 100피트 건너에서 그로서리를 운영하는 한인 U씨가 위로차 와서 들려주는 무용담을 들으니 위안이 되었다. 작은 불행이 더 큰 불행 앞에서 불편으로 변하는 마법을 경험했다고나 할까? U씨의 가게에는 1.5센티 철근으로 모든 창문이 가려져 있어서, 도둑들은 주로 야간에 지붕을 뚫고 들어와 담배를 훔쳐간다고 했다. 담배값 피해 보다 더 큰 것이 지붕공사 였고, 나중에는 보험회사에서 축출당하는 일까지 당하자 익명의 도둑들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다고 했다. 물론 알람시스템이 되어 있고, CCTV에 찍힌 도둑들 영상을 경찰에 보고해도 아주 가볍게 취급하고 성의를 보이지 않는 탓에 나중에는 경찰 리포트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U씨는 마침내 분노의 극에서 복수혈전을 준비했다. 가게 방범등만 켜두고 다른 곳에 주차하고, 밤새 얼음을 만들면서 장식용 일본도를 곁에 두고 강도를 기다렸단다. 잠복 근무 3일만에 자정이 넘자 지붕위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숨죽이며 기다리자 마침내 긴 다리가 쑥 내려오는 순간 일본도로 장렬하게 스윙을 날렸단다. 그 순간 이민 30년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을 경험했다고 했다. 천정에서 덜렁거리는 다리를 보며 911에 전화를 하고, 옥상에 누워있는 도둑과 U씨는 나란히 경찰차를 타고 유치장에 끌려 갔단다. 다행히 U씨는 재판을 받고 벌금과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방어가 아니고 자경단식 응징은 문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단다.
이민 생활 10년 선배의 조언에 의하면, 강도가 들어오면 손을 들고 강도와 눈을 마추치지 말며 강도의 지시에 따라 캐시레지스터를 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장사 초기에는 작은 물건만 도둑 맞아도 저녁 잠자리를 뒤척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도둑맞은 것은 '비자발적 사회환원'이라 포장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들 덕분에 네식구 호구지책했고, 틈틈히 고국의 부모님께 용돈도 드릴 수 있었으며, 은퇴 후 노구를 펴고 드러누울 보금자리도 마련했으니 그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가!
총을 들고 권총강도를 따라가다 총상을 맞고도 생존한 한 선배의 조언이 인상적이었다.
"총이 있으면 목숨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고, 총이 없으면 푼돈만 잃는다." 그 후로도 총 없이 장사를 하는 덕분에 푼돈만 몇번 더 잃었다. 물론 아직도 나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생이란 배에서 멀미를 피하는 방법은 내가 바다가 되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며, 오늘도 미국이란 바다에서 수영하며 그 물에 섞이려고 애를 써본다. 권총강도도 극복해야 할 파도라고 생각하며…
<필자 : Ebony Beauty Supply, Atlanta, 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