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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Erding 들판의 십자가상

 

대학 동창의 초청으로 최근 독일여행을 다녀왔다.  뮌헨 근처 소도시 Erding에서 20여 년 거주하며, 30년간 유럽 지역 나라들을 상대로 국제무역을 해왔던 친구다.  사업가였던 그가 놀랍게도 얼마전 대하소설 <소설 예수>(7권)을 이곳에서 써서 발표한 바 있다.  Erding은 뮨헨에서 자동차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인구 3만 6천 정도의 군 단위 도시다.  ‘Erdinger Weissbier’라는 유명 맥주의 생산지이고, 독일 최대 온천장이 바로 이곳에 있다.  옥수수밭과 목초지가 광활하게 널려 있는 시골 풍경은 한폭의 수채화다.  내가 이곳에 흥미를 가졌던 이유는 따로  있다.  친구가 소설 속에서 그린 “인간 예수”의 모습을 이곳에서 잉태했다는 사연을 듣고부터다.   

 

<소설 예수>는 인간세계에서 살아 숨쉬는 예수를 그린 것인데,  Erding 마을 들판의 한 십자가상<사진>에서 얻은 영감이 컸다고 한다. ”내가 이곳에 살며 자주 산보를 다니던 들판이 있었네, 그 한가운데 작은 개울가에 예수 십자가상을 우연히 만났었지. 지금부터 100여 년 전 1차 대전이 끝날 무렵 어느 부부가 세운 것이었어.  마을이 있을 것 같지도 않는 이 개울가에 왜 세워졌을까 나는 의문을 가졌지.  그런데 저 십자가를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예수를 다시 보게 되었지.  예수상을 허상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던 거야.  위로 받아야할 사람들은 따로 있어.  젊은 사람들은 깨달음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가면 되지만, 인생을 다 살고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위로를 받아야지, 깨달음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소설에서 예수의 모습 속에 위로하는 예수를 그려 넣기 시작한 것이라네.”  친구의 얘기였다. 친구가 얘기한 그 십자가상은 소먹이 목초를 기르는 넓고 넓은 들판 한 가운데, 키가 큰 나무들로 가려져 있었다.  

 

유심히 살펴 보아야 발견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십자가를 대하자,  내 마음도 전율과 함께 숙연해졌다.  친구의 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 십자가상이 주는 느낌은 아주 아주 달랐다.  독일은 물론 유럽 나라들 여행은 웅장한 성당 건축물을 구경하는 것이 전부일 정도로 성당, 성당, 성당…. 이 수도 없이 널려있다.  그런데 십자가상들은 대부분 웅장한 성당 건물 속에 갇혀 있는 하나의 조각품일 뿐,  성당의 주인공은 건물의 위용이요, 건축 당시 파워를 가졌던 황제나 교황으로 보인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교회당을 짓고, 자신들의 파워와 위대함을 과시하고, 그 안에 갇힌 예수상은 단지 장식품에 불과했음을 역사가 얘기해 준다.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이 벌인 처참한 종교전쟁을 생각하면 더욱 더 끔찍하다.  독일이 바로 30년 전쟁의 중심지였고, 그 전쟁으로 8백만명이 죽었다.  그게 예수가 원했던 것이었을까? 아니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 더 큰 파워를 갖기 위해 예수의 이름과 십자가를 빌렸을 뿐이었다.  나는 이 Erding 들판의 십자가상에서 비로소 성당 건물의 진정한 주인공 “예수”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100여년 동안 엄청난 추위와 풍상에 시달려 낡고 초래해 보였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욱 감동과 권위로 다가왔다.  수많은 전란 속에서도 살아남아 꿋꿋하게 버티어온 마을 주민들과 함께 위로하고 위로받았을 그 십자가상이야말로 진정한 예수상이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여태껏 웅장한 교회당 건물들 속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십자가상’의 존재의 의미가 나에게 새롭게 전달되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예수를 팔아 파워를 쌓고, 그 파워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경쟁하듯 더 큰 성전을 짓고, 교회당의 크기로 자신들의 위세를 키재기 한다.  불신지옥! 사랑이 아니라 묵시록적 협박으로 천당행을 호도한다.  교회당 안에 갇힌 예수는 울고 있다.   물론 이번 여행에서 Erding시만을 즐긴게 아니다. 거대한 자연의 나라, 신비스러운 옛 성들, 시골로 갈수록 그림 같은 마을들이 전국에 널려있는 독일이 여행자들에게 얘기해 준다. 자연과 벗삼아 비우며 살라, 자연처럼 나를 내어주는 삶을 살라,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니, 가능하면 더 많은 여행을 해보라, 그리고 여행이 알려준 대로 아름답게 살다 가라. 사업가일수록 돈을 벌면 여행을 즐기고, 더 큰돈을 벌어 세상을 구원하라. 해 질 무렵 조용히 흐르는 저녁 강물 같은 벗들이 함께 하면 더 좋다. 우정의 멋진 흔적을 가능한 많이 남기라. 여행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이 인생을 바꾼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