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왜, 우리는 대화에 서툰가?

 

 

 

한국인들은 대화에 서툴다.  상대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주제보다는 주변의 얘기로 대화 자체를 망가뜨리기 일수다.  부부간의 대화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모처럼 휴일에 함께 외출을 하기로 약속했던 남편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이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남편 : 오늘 회삿일 때문에 함께 외출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어쩌죠? 

아내 : (화를 내면서) 내 그럴 줄 알았어요.  애초에 약속한 내가 잘못이지. 

남편 : 화부터 내네요? 자세한 이유를 들어보지도 않고…

아내 : 들어보나 마나 아닌가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나 해요?

남편 : 그럼 당신은 날 사랑해서,  화부터 내나요?  아내 : 당신 같으면 화 안나겠어요?…….   

 

대화는 이렇게 평행선으로 달리고, 아내는 결국 주제와 상관없는 얘기를 늘어 놓는다. 자기가 고생했던 시집살이 얘기를 비롯하여,  남편이 과거에 저지른 온갖 잘못과 실수를 하나씩 들추어 남편을 몰아부친다.  남편도 반박하고, 역공격하며, 대판 싸움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부부의 대화의 주제는 남편이 꺼낸 “외출불가에 대한 이유”다. 그렇다면 아내는 감정을 드러내기에 앞서, ‘외출 불가’ 이유를 진지하게 들어보고,  타당하다면, 다음 약속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사랑하는 부부의 대화가 아닐까.   왜 이런 식으로 대화가 흐르는가?  헛 ‘자존심’ 때문이다. 어느 경우든 저주는 일은 죽기보다 싫다. 실리가 없어도 명분이 중요하고, ‘찬물 마시고 이빨 쑤시는 양반‘의 체면 문화는 여전히 살아 있다.  세계에서 제일 싸움을 많이 하는 민족이라는 통계가 보여준다.  말씨에 높낮이가 있어 그럴까?  술좌석에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다가도 ‘반말’을 한다는 이유로 싸움판이 벌어지는 일은 흔하다. 정치판은 어떤가?  나라의 발전을 위한 핵심 어젠다는 실종되고, 오직 파당으로 편갈라 상대방 말꼬리를 잡고 정쟁만을 일삼는다.     

 

사업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서투른 대화 때문에 파트너십이 깨지고, 합의가 틀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협력을 통해 공동의 실리를 극대화하기 모인 협회가 왜 싸움판으로 변질 되는가? 본질은 사라지고 곁가지 문제를 가지고 상대를 깎아 내리고, 손가락질 하는 자존심 대결을 벌이기 때문이다.  뷰티업계 최대 단체인 NFBS 총회장 선거가 이 달에 실시된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볼썽 사나운 모습이 재현되고 있는 것 같다.  주제를 벗어난 감정싸움으로 치달으면, 선거를 실시하는 의미가 없지 않는가.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이 선거판의 이슈가 되어야 하고, 후보자의 능력이 선출의 잣대가 되면 그만이다.  총회장의 자리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무엇보다도 업계 전체의 판을 한 눈으로 꽤뚫고, 미래의 비전를 갖고 실현할 수 있는 남다른 아이디어와 능력이 필요한 자리다.  이미 그런 건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주류산업계의 경우, 장사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업계를 대표한다.  자기 비즈니스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업계를 대표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협회원들도 그렇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므로, 협회와 리더들에 대한 냉소와 비난보다, 서로 힘을 합해 장사를 더 잘할 수 있도록 협력과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  그것이 비즈니스맨들간의 참다운 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화는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다.

 

주제에 벗어나지 않은 범위에서 얘기하되,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그 진심이 겉으로 드러나는 겸손한 태도가 중요하다.  상대의 견해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그 견해가 자신의 주장보다 더 타당성이 있다면 물러설 줄 아는 겸허한 마음, 저줄 수도 있는 아량을 가져야 한다.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양보도 하고 타협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업하는 사람들이말로 그런 태도가 더욱 필요하다.  합의가 곧 협력이 되고, 협력이 곧 더 큰 사업으로, 더 큰 이익을 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협회 리더들에게 부탁한다. 우리는 모두 비즈니스맨들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민주투사도 정치가도 사회운동가도 아니다.  공동선(共同善: Common Good)에 기여한다는 것은 그들과 마찬가지지만, 사업가들은 수단과 방법만은 달리해야 한다.  대화와 협력을 통해 더 큰 실리를 챙길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우리같은 장사꾼들의 정의가 아니겠는가?